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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국화] 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 “미·중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 가속화…미국과 연동성 강화될 것”

배세태 2021. 11. 29. 20:38

“미·중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 가속화…미국과 연동성 강화될 것” 증권전문가
에포크타임스 2021.11.29 취재본부 이윤정 기자
https://kr-mb.theepochtimes.com/share/601008

“기술 경쟁은 ‘모 아니면 도’…어느 편에 서느냐가 중요”
‘中, 최대수출대상국’은 고정관념…대중 수출 10년 이상 정체
“중국, 생산기지로서 매력도·투자 탄력도 갈수록 떨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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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반도체 등 첨단기술분야에서 미·중 중심으로 공급망이 이원화되는 트렌드가 강해지고 미국 공급망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연합뉴스

“반도체 등 첨단기술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이원화되는 트렌드가 강해지고 있다. 기술 경쟁은 항상 ‘모 아니면 도’로 간다. 기술 분야는 어느 한쪽이 패권을 쥐게 되면 다른 쪽은 탈락하는 흐름이 분명히 나온다. 경쟁도 중요하지만, 어느 편에 서느냐가 중요하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연구위원)은 11월 26일 에포크타임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미중 경쟁의 핵심 이슈이자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공급망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급망 ‘부족’ 문제가 이슈로 주로 거론되지만, 오히려 공급망의 재편 혹은 강화 가능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가능성은 내년쯤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공급망 재편 문제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분석은 최근 미국 기업의 중국산 제품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분야 생태 사슬이 미국 중심 진영과 중국 중심 진영으로 재편되는 양상과 일맥상통한다. 이진우 팀장은 “기술 분야 투자가 강화될수록 국가 간 동조화(coupling·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간주되는 두 변수 내지 현상이 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나 공급망 양분화 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상대적으로 중국이 아닌 미국 공급망에 속한 산업군에 좀 더 기회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당분간 이런 현상이 노골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을 소집한 것에 대해서는 “반도체 핵심적 부분을 전략적으로 확충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지도 강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미국은 최근 동맹국과 관계에서도 첨단제품의 원천기술 확보를 중시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동맹도 중요하지만, 미래 먹거리인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의사표명이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기술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우리는 공동의 안보·번영 증진을 위해 핵심·신흥 기술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성명에는 “반도체, 친환경 EV 배터리, 전략·핵심 원료, 의약품 등과 같은 우선순위 부문을 포함해 우리의 공급망 내 회복력 향상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차세대 배터리, 수소에너지, 탄소포집·저장(CCS) 등과 같은 청정에너지 분야 및 인공지능(AI), 5G, 차세대 이동통신(6G), Open-RAN 기술, 양자기술, 바이오 기술 등 신흥 기술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함으로써 미래 지향적 파트너십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하였다”고 명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후 주기적으로 세계적 반도체 대기업 관계자들을 소집해왔다. 지난 4월, 5월, 9월 회의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인텔·애플·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참석했다. 회의 소집에는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있었다.

이에 화답하듯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20조2130억 원)을 투자해 미국 텍사스 테일러 시에 제2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텍사스 오스틴 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은 2024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내년 상반기에 테일러 시 신공장 건설을 천명했다.

이를 두고 이진우 팀장은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결정은 미국 공급망에 더 방점을 찍는 의미로 풀이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 그 자체는 그런 공급망의 편입, 강화에 대한 흐름으로 이해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 비메모리 분야에서 대만 TSMC보다는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미국의 고객사를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번 삼성의 미국 투자를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서 안미경미(安美經美·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로 바뀌는 시그널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안미경미를) 기업 차원에서 대놓고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알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과거보다는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연동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전 세계적으로 큰 시장인 건 변함없지만 한국이 중국 시장에서 예전처럼 고수익을 내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는 추세다. 기술 발전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고, 중국 기술이나 데이터 산업은 폐쇄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기술 산업은 예전보다 미국 쪽으로 옮겨 올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기술 표준을 같이 선도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쓸모없는 기술이 돼버리는 게 첨단기술 분야다. AI 등 극히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기술의 주도권을 다 미국 기업들이 지니고 있다. 한국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있는 전략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연동성을 강화하고 미국 쪽에 보폭을 맞추면서 가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근 SK 하이닉스의 중국 램 공장 첨단화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도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흐름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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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 | 본인 제공

영국 로이터는 지난 11월 18일 “SK하이닉스가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 공장에 초미세 공정 반도체 핵심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을 계획했으나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 노광장비는 반도체 원판인 실리콘 웨이퍼(Wafer)에 5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 이하의 극도로 미세한 회로를 그려 넣는 첨단 장비다. 반도체 칩 생산의 핵심이자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필수적인 이 장비는 네덜란드 ASML사가 전 세계 수요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9년 6월 이후 첨단 EUV 장비의 중국 수출을 불허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네덜란드 정부에 EUV 장비의 대중 수출 제한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중(對中) 기술봉쇄 정책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고 있는 중국은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EUV 노광장비를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11월 22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 EUV를 들여오지 못하는 원인으로 “첨단기술로서 민감한 분야이고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중국 장쑤성 우시 공장에서 D램 칩의 절반가량을 생산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우시 공장에 EUV 장비를 도입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고 반도체 공급망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진우 팀장은 “기업의 개별적 문제로 보기보다는 공급망이 양분화되는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의 포지션이 당장 어느 기업이 대체할 만한 수준도 아니고 이미 시장에서 과점적 지위를 시장에서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당분간 미국 공급망에서의 지위나 영향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 심각한 수준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 본다. 오늘날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 구도는 지난 수 차례 ‘치킨게임’을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경쟁력의 급격한 저하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작다”고 일축했다. 단순히 국가 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마찰이 생긴다기보다는 국가 간 연계성이나 동조화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SK하이닉스는 물론 국내 반도체 업계에 중국 투자 기피 현상이 확산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이진우 팀장은 “탈(脫) 중국화가 진행 중”이라며 “특히 기술 민감도가 높은 분야는 예전처럼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중국을 선호하는 트렌드는 이미 지났다”고 전제한 뒤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했다. “트렌드가 베트남이나 아세안(ASEAN) 지역 공급망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 판매를 목적으로 공장 설비를 증설할 수는 있겠지만 생산 기지나 중간 기지로서의 중국의 매력도는 갈수록 떨어질 수 있고 투자 규모도 예전보다 탄력이 떨어질 것이라 본다.”

탈중국화가 가속화되는 주요 원인으로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조금 문제를 지적했다. “중국은 자국 기업에만 이익을 주고 다른 기술 기업에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해 배척하기도 한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만 해도 중국 기업이 독점할 정도로 자국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상황이라 중국 기업과 경쟁해서 주도권을 쥐기는 어렵다.”

중국의 기업 보조금 문제는 미중 무역분쟁의 핵심 쟁점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반도체 등 전략 분야 기업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두고 중국이 ‘각국 정부는 수출촉진을 목적으로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높은 대중국 무역의존도와 그로 인한 위험에 대해서도 이진우 팀장은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우리나라가 가진 고정관념 중 하나가 ‘중국에 제일 많이 수출한다는 것’이라며 대중수출액이 10년째 정체 중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이 단일국가로는 최대수출대상국이지만 대중국 수출은 2010년 이후부터 늘어난 적이 없고 그 비중도 정체돼 있다. 반면 미국 공급망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려야 할지가 명확해진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은행 분석과도 일치한다. 11월 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대중 수출의 구조적 특징과 시사점(BOK이슈노트)’은 “한국의 대중 수출 총액은 2010년 이후 대체로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 등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거점을 동남아시아로 이전하고 중국의 생산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국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중장기적으로는 대중 수출이 과거와 같이 추세적으로 확대되면서 우리 수출의 빠른 증가를 견인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 및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의 영향으로 우리 기업을 포함한 다국적 기업들의 글로벌 생산거점이 동남아시아, 인도 등으로 계속 이전되는 데다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 등으로 중국의 자급률 제고도 고부가가치 품목으로까지 확산하는 양상이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