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세 가지 ‘착각의 덫’에 걸린 민주당
조선일보 2021.11.19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11/19/AIZ2LVKCURFQ5MBOHTAEVZ2XNI/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 소장은 며칠 전 필자와 한국 대선에 관한 대담 중 1987년 대선 당시 엄청난 인파가 몰린 김영삼의 부산 수영만 유세를 회고했다. 나는 “주최 측 추산” 200만의 김대중 보라매 공원 유세와 노태우 여의도 유세 인파에 대한 기억으로 맞장구쳤다.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그 대선에서 노태우는 양김 분열 덕에 36.6%라는 낮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김영삼과 김대중도 1992년과 1997년 차례로 대통령이 되었다. TK·PK·호남·충청의 맹주였던 ‘1노 3김’은 지역주의의 상징이었다. 1987·1992·1997년 대선은 ‘지역’이 절대적 상수였다. 특히 DJ 중심의 호남 구심력은 강력했다. DJ 시대가 저물며 2002년 대선부터 민주당은 ‘호남 대망론’을 대체하는 ‘전략 동맹’을 맺었다.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 구상이다. 민주당은 이 전략으로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었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호남 대망론’과 ‘전략 동맹론’이 충돌했으나 경북 안동 출신 이재명의 완승으로 끝났다. ‘호남이 미는 영남 후보’ 전략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민주당이 영남 후보를 내세운 2002년 이후 지역주의는 상수에서 변수로 서서히 약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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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지역주의의 공간을 빠르게 메운 것은 이념과 세대였다. 2002년 ‘86 세대’가 30·40대로 진입하면서 민주 대 반민주, 반미 대 친미, 친일 대 반일의 진영 프레임이 선거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2012년 대선은 ‘보수 동맹’과 ‘민주 동맹’이 총결집한 선거였다. 박정희의 딸과 (비극적으로 죽은) 노무현의 동지가 맞붙었다는 서사가 진영을 더 결집시켰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이재명은 2002년 노무현의 역전승 재현을 꿈꾼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은 2007년 이명박의 압승 재현을 기대한다. 우세를 쭉 유지했던 2012년 박근혜처럼 50%를 넘기는 승리를 원할 수도 있다. 51.55%를 넘겨 역사상 최고 득표율로 이긴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승리다.
아직은 세 가지 모두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냉정하게 전망하면 민심 열차는 정권 교체 레일을 KTX 속도로 달리고 있다. 2002년에는 정몽준, 2012년에는 안철수와 단일화라는 반전 모멘텀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대선은 4·7 재보선 때처럼 정권 심판이라는 정치 구도가 인물과 이슈를 압도하고 있다. 오세훈·박형준에 대한 네거티브가 먹히지 않았듯 윤석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도 거의 먹히지 않는다. 이슈도 없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 선거, 2020년 총선을 지배했던 탄핵, 한반도 평화, 코로나 같은 ‘메가 이슈’가 없다.
민주당 위기의 핵심은 위기를 너무 늦게 인정했다는 데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① 위기에 동의하는가? ② 원인은 무엇인가? ③ 해결책은 무엇인가? 순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위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민주당의 전략적 오류는 세 가지 ‘거대한 착각’에서 온다. ① 우리에겐 40%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② 중도는 ‘적폐 청산’ 전선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③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은 없다. 모든 정권이 예외 없이 콘크리트 지지층은 없고 레임덕은 있다는 것을 봐놓고도 그런 ‘집단적 맹신’에 빠진 것은 역사에 대한 오만한 태도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만든 허구의 신화 덫에 갇혔다. 콘크리트 지지층 40%가 있다고 믿으니 강성 지지층 눈치만 봤고,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라는 주술에 갇혀 차별화 전략 기회를 스스로 봉쇄했다. 총선 180석 압승이 독이 됐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가져다준 적폐 청산의 유통기한은 끝났다. 대중이 더 이상 구매하지 않는다.
민주당의 위기는 전략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탓이다. 지지자를 부끄럽게 만든 탓이다. ‘보수 동맹’이 탄핵 이후 ‘중도 보수’의 이탈로 무너졌듯 ‘민주 동맹’도 스윙보터인 ‘중도’의 이탈로 균열이 오고 있다. 특히 절대적 우군 2030의 이탈이 뼈아프다. 민주당은 ‘이중 기득권’ 상황에 처해 있다. 50대 이상 유권자들은 정권 교체 대상으로 보고 있고, 2030은 민주당의 주류인 ‘586세대’를 세대교체 대상으로 본다. 2030의 이탈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4·7 재보선에서 확인됐다.
2022년 대선 전략적 전선은 세대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모두 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물려받은 ‘상징 자본’을 다 탕진했다. 이젠 이념적 가르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50대와 2030의 이탈로 민주당은 지역·세대·이념·계층 전 전선에서 수세에 몰려 있다.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 40대를 제외한 전 세대, 진보층을 제외한 보수·중도층에서 모두 열세다. 부동산 정책의 참혹한 실패로 부자는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과 서민도 등을 돌리고 있다.
캠페인 전략의 목표는 네 가지다. ① 나에 대한 지지 강화 ② 나에 대한 반대 약화 ③ 상대에 대한 반대 강화 ④ 상대에 대한 지지 약화다. 내가 민주당의 전략가였다면 오래전부터 ②④①③ 순서로 캠페인 목표를 정했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③①④②의 잘못된 순의 전략적 오류에 빠져 있다. 여전히 적폐 청산 프레임이 작동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의 전략도 동의할 수 없다. 내가 국민의힘 전략가라면 ③②④① 순으로 캠페인 목표를 정할 것이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은 ①③④②의 잘못된 순의 전략적 오류에 빠져 있다. 본선은 당내 경선과는 완전히 다른 대상을 상대로 한 캠페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탓이다.
중도 스윙보터를 잡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전략·인물·조직·메시지로는 안 된다. 압도적 정권 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의 전략적 오류가 승패의 변수가 될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캠페인 전략을 전면 재검토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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