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문재인 정부는 더는 중국에 흔들리는 외교 안 된다

배세태 2021. 5. 27. 10:11

※더는 중국에 흔들리는 외교 안 된다

한미정상회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95세 전쟁영웅의 명예훈장 수여식이었다. 노병(老兵)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과 맞서 싸운 중위였다. 백악관이 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한국 대통령을 참석시킨 것은 처음이다. 북한과 중국, 한국과 미국의 의미 있는 관계를 재확인 하며, 한미가 피로 맺어진 혈맹(血盟)임을 각인(刻印)시킨 시간이었다.

조국과 자유를 지켜낸 군인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는 훈장수여식의 영웅 앞에서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하고 “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함께 지켜준 참전용사들 덕에 폐허에서 일어나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며 미국에 감사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왠지 감격스러운 모습이었다. 드디어 한미동맹이 제자리를 찾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런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모습은 그 때 뿐이었다. 그날 이후 서울로 돌아온 한국 정부의 흔들리는 대중(對中) 외교자세로 인해 안타깝게도 일말의 희망적 감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이 3대 ‘반중(反中)키워드’인 대만, 남중국해, 쿼드를 미국과 합의해 공동성명에 넣고는 서울에 와서는 “고의는 아니다”라는 등의 딴소리를 하는 꼴은 한마디로 참담하기만 했다. 우리 국익(國益)에 중요한 한미 합의를 중국이 뭐란다고 변명으로 일관 하는가 말이다.

중국은 이번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포함된데 대해 “불장난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 매우 원론적이고 원칙적 내용”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 공동성명에서 명시한 ‘남중국해 항행 자유’에 대해 중국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반발하자 외교부 차관이 “일반적인 문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무슨 원칙도 없고 배알도 없는 저자세 외교란 말인가.

한미정상회담에서 있은 외교적 성과 중 하나는 ‘미사일 사거리 족쇄’가 완전히 풀렸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북한이나 중국이 가지고 있는 수 천기 이상의 중장거리 미사일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외교부 차관은 방송인터뷰에서  “중국이 불편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 중국을 고려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한미가 반도체. 배터리.5G 등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을 산자부 장관은 “중국을 적시하지 않았으니 중국이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어설픈 변명들을 하는 것인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했단 말인가. 너무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다. 어떻게 대한민국 고위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이처럼 무책임한 말을 거침없이 한다는 말인가.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는 월급이 아까울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태도는 미. 중 모두의 불신만 키우는 ‘최악의 외교’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관계를 복원하자는 약속을 해놓고 중국이 화를 낸다고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둘러대기만 하는 모습이야말로 외교의 기본자세마저 망각한 것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영리한 외교를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처럼 뒤섞인 메시지로 양측 모두의 신뢰를 잃어서 되겠는가.

따라서 일단 미국의 반중 노선에 발을 담갔으면 되돌려서는 안 된다. 향후 대중관계는 사드 업그레이드와 같은 새로운 변수들이 몰려올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도 대중외교의 원칙은 확실하게 확립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 순간마다 불어오는 외세의 태풍에 우리만 큰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예컨대 정부와 기업은 이제부터라도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줄여가면서 원칙에 따른 대중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이라는 자세를 취해온 호주나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중국이 공세적으로 나오자 서방과의 관계를 다양하게 강화하는 이른바 ‘역균형(counter-balancing) 정책’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경제보복과 군사압력을 가했지만 일정수준 이상의 마찰은 피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도 이들 국가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뉴질랜드도 ‘반중 후폭풍’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보도다. 나나이아 마후타 뉴질랜드 외무장관은 엊그제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상당히 큰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완충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는 신호를 수출업계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얼마나 현명한 대처인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만하다.

우리도 이처럼 정세변화에 따라 입장은 얼마든지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원칙은 절대로 흔들려서 안 된다. 그래야 중국도 함부로 못 대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 내내 중국 앞에만 서면 스스로 작아졌다. 2017년 중국의 사드보복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 MD(미사일 방어) 참여, 사드 추가배치, 한. 미. 일 군사동맹을 맺지 않겠다.”는 ‘사드 3불(不)’을 약속해 군사주권을 양보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실수를 저질렀다.

문재인 정부는 얼마 전까지 ‘쿼드’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북한의 인권은 물론 중국의 남중국해 팽창과 홍콩. 위그루 족의 인권 탄압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는 시진핑과 통화해서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고 칭송했다. 그러더니 한미회담에서는 ‘쿼드의 중요성’, ‘인권과 민주화 증진’과 같은 말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한미동맹의 복원이 이뤄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구처럼 됐다.

동맹의 대원칙은 ‘신뢰’가 우선이다. 신뢰가 깨지면 동맹관계는 하루아침에 깨진다. 한미동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국은 문 대통령이 했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한국정부가 미국에서 동맹을 강조하고 귀국해서는 친중(親中) 발언을 해대면 두 나라 모두에게 우습게 보일 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 한미합의는 우리 국익에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이제 정부는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말고 합의 실천에 매진할 일만 남았다.

출처: 장석영 페이스북 202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