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오세훈 생태탕·천안함 좌초설…김어준의 말에 현혹되는 이유

배셰태 2021. 5. 11. 14:37

오세훈 생태탕·천안함 좌초설…김어준의 말에 현혹되는 이유
조선일보 2021.05.11신 동흔 기자https://www.chosun.com/opinion/dongseonambuk/2021/05/11/KGNYBTZU2FEPBFDMUIKU2B4B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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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뉴스공장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끝나자 ‘생태탕집’ 이야기가 싹 사라졌다. 검색을 해봐도 선거 당일 하루 전인 4월 6일 이후 새로운 뉴스는 보이지 않는다. 생태탕 집 사장과 아들을 익명으로 출연시켜 오세훈 후보에게 ‘거짓말장이’ 프레임을 씌우려 했던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입을 닫았다. 하지만 ‘오세훈은 생태탕집에 있었다’는 이 사이비 서사는 계속 살아남아 ‘천안함 좌초설(說)’ ‘미투 공작설’ ‘세월호 고의 침몰설’처럼 특정 진영끼리만 통하는 대안 현실(alternative reality)의 우주를 떠돌아다닐 것이다.

가짜 이야기가 작동하는 것은 뭔가 구체적 근거를 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론이 구체성을 띤다고 실제 발생할 확률까지 높은 것은 아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이 쓴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엔 유명한 실험이 하나 나온다. 린다라는 여성에 대해 ’31세 미혼이며 직설적이고 아주 똑똑하다. 철학을 전공했다. 학생 때 차별과 사회 정의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반핵 시위에도 참여했다'는 묘사를 보여준 뒤,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다’와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며 여성운동에 적극적이다’ 둘 중 어느 경우가 더 흔할지를 묻는데, 참가자의 85~90%가 후자를 택한다. 확률상 린다는 그냥 은행원일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사전에 제시된 정보 때문에 오류에 빠진 것이다. 우리에겐 그럴싸한 이야기에 빠지는 편향(bias)이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김어준류(類)가 만든 이야기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예컨대 세월호 고의 침몰의 근거로 항로 기록 선박자동식별장치(AIS)가 모조리 조작됐다거나(영화 ‘유령선’), 침몰 직전 앵커가 내려졌다(‘그날 바다’)는 등 매우 ‘구체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생태탕집’도 마찬가지다. 선거 막판에 김어준은 “(오 시장이) 하얀 바지를 입고 있었다” “페라가모 로퍼를 신고 있었다” 등 디테일을 강조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황이 중첩될수록 발생 가능성은 더 낮아지는 법이다. 카너먼도 이야기한다. “그들은 아주 복잡한 시나리오를 짜놓고는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우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시나리오는 단지 그럴듯할 뿐이다.”(위의 책 251쪽)

김어준은 자기 주장이 허위로 판명날 때마다 “가설을 제시한 것”이라고 둘러댄다. 통상 가설은 통계적으로 유의하거나 실험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기각되는 법이다. 반면 세월호는 2014년 이후 검찰 수사와 국정조사, 감사원, 특조위 등 8 차례 조사를 벌이고도 또다시 아홉 번째 조사에 들어간다. 흡사 온 나라가 세월호 고의 침몰 가설 입증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격이다. 북(北)에 의한 천안함 피격 사건도 10년이 지난 최근까지 재조사 논란으로 옥신각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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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충정로 '벙커1' 카페에서 판매용으로 전시되어 있는 김어준 인형과 머그컵, 다이어리 제품.

우리는 골방에서 팟캐스트 녹음하던 음모론자를 ‘언론인’이라 부르고, 그에게 매일 아침 지상파 라디오 진행을 맡기면서 회당 200만원씩 출연료를 주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음모론의 신전(神殿) 격인 ‘뉴스공장’에 자주 얼굴을 비친 이들이 청와대 등 요직에 진출하고, 김어준이 유튜브를 찍는 서울 충정로 카페 ‘벙커1’에는 여당 최고위원 당선자가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한다.

최근 찾아가 본 이 카페에는 9만9000원짜리 김어준 인형에 김어준 얼굴이 그려진 머그컵 같은 굿즈를 팔고 있었다. 품질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데, 가격이 꽤 비쌌다. 제 발로 찾아오는 추종자들에게 뭘 얼마에 판들 뭐라 할 수 없지만, 그가 만들어낸 각종 음모론을 입증하기 위해 지금 우리 사회 전체가 들이고 있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