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김행범 칼럼] 악 중의 악, 패스트트랙의 선거법안■■

배세태 2019. 12. 4. 16:47

[김행범 칼럼] 악 중의 악, 패스트트랙의 선거법안

펜앤드마이크 2019.12.03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517

 

패스트트랙에 오른 다른 어떤 법안보다 자유 민주주의에 주는 해악은 선거법안이 가장 극렬

야당을 영원히 소수당으로 고착시키는 차별적 입법이며, 좌파 30년 독재를 가능케 하는 수권법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법의 실질적 내용이 정당한가보다 그 입법 절차가 합법적인가를 중시하는 것이 법실증주의다. 이에 의하면 법을 만들 권력이 있는 자들은 어떤 내용의 법도 창설할 수 있고 이 법의 해석도 그들이 좌우한다. 곧 '악법도 법'이 된다.

 

이런 위험을 켈젠(Hans Kelsen) 같은 법실증주의자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법의 일반성(generality)에 더 주목하였다. 비록 법을 만든 세력이 자의적인 내용의 법을 만들어 그 정당성에 문제가 있을지라도 국민 일반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적용한다면 그것으로 개인의 권리 보호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법 앞에 평등'은 특히 중요한 원리가 된다. 법의 정당성은 의미가 없고 단지 법은 '힘'이거나 덜 조악하게 말하면 '주권자의 명령'일 뿐이다.

 

현행 국회법 개정 이후 9년이 되어 가지만 그간 패스트트랙을 통한 입법 시도는 여권이 지금 밀어붙이는 유치원 3법,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의 네 개 법안 및 이미 법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참사에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등 5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 모두가 현 여당의 주도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속칭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선거법안은 그 성격이 나머지 법안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 및 가장 나쁜 해악을 가져온다는 점이 국민들에게 충분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중략>

 

지금 여당은 패스트트랙 법안들이 본회의에 부의 및 상정이 되면 일거에 과반수로 통과시키겠다고 만반의 준비로 벼르고 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권이 패스트트랙으로 급조하려는 선거법의 성격은 국회의 의석 배분 규칙이고 그것은 통상적 입법이 아니다. 입법규칙에 관한 규칙, 곧 국회 구성을 좌우하는 공공선택론에서 말하는 실질적으로 '헌법' 성격을 갖는 입법이다. 뷰캐넌의 헌정이론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함의는 이런 입법에는 통상적인 과반수규칙이 아니라 만장일치에 준하는 압도적 동의가 꼭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여당 연합은 자유한국당과의 합의를 더 모색하고 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합의 과정을 줄이기 위해 패스트트랙 제도에 올린 것이다. 선거법이 실질적 의미의 헌법 규칙이라는 성격도 무시한 채 형식절차만 거치면 바로 법으로 만들겠다는 법실증주의의 결과이다. 국회가 형식적 절차에 따라 만들기만 하면 다 법이라는 제정법(Gesetz) 만능주의에 빠진 이런 법실증주의자들이 무슨 논리로 때로 법률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지 모르겠다.

 

패스트트랙 제도는 본래 다수파에게 이득을 주는 제도이다. 특이하게도, 이 제도가 국회법에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이를 이용해 나타난 법안은 모두 현재의 여당측이 주도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보수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을 때 왜 그들은 2016년 총선에서 우선 좌파정당 죽이는 선거법을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통과한 후 선거에 나서지 않았을까?

 

보수정당이 아주 무뇌아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패스트트랙이란 예외적 방식으로 상대 죽이기식 선거규칙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암묵적 양식이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규칙에 관한 규칙'은 단순 과반수가 아니라 여야의 훨씬 높은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존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과반수연합을 얻자마자 통상적 입법인가 혹은 입법규칙에 관한 입법인가 구분 따위엔 아랑곳없이, 과반수를 이용해 보수정당 죽여 그 시신을 나누어 먹겠다고 좌파, 준좌파, 위장좌파들이 하이에나처럼 모여들어 공격하는 것이다.

 

본래 국회선진화법이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한 것은 법실증주의에 눈먼 의원들이 과반수로 아무 법이나 만들라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이제 과반수만 얻기만 하면 모든 정당은 이 정권의 제도 악용을 답습할 것이다. 결국, 법은 무엇인가? 라는 법철학의 궁극적 명제로 돌아온다: '법은 비법(非法)이 아니어야 한다.' 자명한 결론을 더 쉽게 말하면 법도 아닌 법을 만들려는 무익한 짓 말라.

 

여당에게는 법실증주의자들의 변명이 있다: "우리는 다수파이니 선거법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이에 불만인 너희 야당도 언젠가 다수당이 되어 네게 유리하게 선거법을 만들어 봐!" 법실증주의자들이 주장대로, 법의 일반성으로 인해 모든 정당에게 평등한 결과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당에게 동일한 결과가 돌아온다는 법 앞의 평등이란 완전히 거짓이다. 이 선거법 아래서는 야당이 다수당이 될 기회는 전혀 없다. 이 정권이 역대 어떤 나쁜 헌법에서도 나타난 적 없는 이런 결과를 선거법 개정만으로 도모하는 셈이다.

 

공수처법안 등 패스트트랙에 오른 다른 어떤 법안보다 자유 민주주의에 주는 해악은 선거법안이 가장 극렬하다. 이 정권은 다른 법안 다 포기하더라도 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안을 끝까지 통과시키려 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규칙을 결정하는 규칙'의 입법을 통상적 입법에 적용되는 과반수규칙, 그것도 충분한 합의를 억제하는 패스트트랙이라는 절차로 통과시키려는 점에서 절차적으로 부당하며, 야당을 영원히 소수당으로 고착시키는 차별적 입법이며, 좌파 30년 독재를 가능케 하는 수권법이다. 좌파 독재를 꿈꾸는 자들에게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악도 변명될 수 있다는 소포클레스의 말이 모토이다. 그러나 이는 그 좌파 독재를 막는 목적에도 적용될 말이다. 선거법 개악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