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한미동맹]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배세태 2019. 1. 22. 11:23

[남정욱 칼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방위비 분담금

펜앤드마이크 2019.01.20 남정욱(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 대표)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808

 

당시 일본은 축제분위기였다. 나라 전체가 들떠 있었다. 근대화의 우등생인 일본은 서양이 수 백 년 걸린 개혁을 불과 십 수 년 만에 압축 달성했다. 그리고 300년만의 리턴 매치에서 숙적인 중국의 무릎을 꿇렸지만 그래봐야 결국 지역구였다. 그런 일본에 손을 내밀어 훌쩍 몇 체급을 끌어올려 준 나라가 영국이다. 1902년의 영일동맹으로 일본은 지역구에서 전구구로 올라섰다. 신의 선물과도 같았던 영일 동맹을 ‘메이지 다이쇼 견문사(明治大正見聞史’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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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재현된 비대칭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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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품없는 집 사람이 명문가에 시집가는’ 이 사건은 50년 후 그 근처 나라에서 다시 재현된다. 한미동맹이다. 물론 경우는 좀 다르다. 우리가 먼저 덥석 잡고 놔주질 않았으니까. ‘볼품없다’고 하면 기분이 나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쓸데없는 자존심만큼 해로운 것도 없다. 그리고 이 ‘볼품없는’이라는 형용사는 2019년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1950년대의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것이다. 솔직히 좀 볼품없었던 건 사실 아닌가.

 

한미동맹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 동맹이 미국의 이익에도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의미를 축소한다. 물론 의화단 전쟁에서의 일본처럼, 한국 전쟁을 통해(미국의 입장에서 본 명칭이다) 미국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다시 보고 대한민국 군대의 정신력에 깊은 인상을 받기는 했겠지만 이 역시 동맹이라는 시스템으로 이어질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미국 역시 고립주의라면 영국에 뒤지지 않는 나라 아니던가. 적당히 지원하면서 적당히 활용하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 그 동맹이 가능해진 것은 아시다시피 이승만의 업적이다. 동맹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동맹의 효과는 바로 경제로 이어진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가게에 외상을 주는 사람은 없다. 나라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앞날이 불안한 나라와 교역을 하는 정신 나간 나라는 없다. 우리에게 한미동맹은 일종의 보증서였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에게만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다. 불씨만 보이면 그 즉시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던 동북아에 장기 평화를 가져온 게 한미동맹이다. 물론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1970년대 전반까지 우리는 GNP의 4%라는 저렴한 국방비의 지출로 경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외교망은 넓어졌고 대한민국은 해양 지향의 태평양국가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 영일동맹처럼 우리 역시 비대칭 동맹이다. 비대칭 동맹은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의 안보를 보장하고 대신 약한 나라는 국가의 자율성을 일부 포기하는 동맹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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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동맹과 한미동맹은 그 질이 살짝 다르다. 영일동맹은 이익동맹이었다.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이다. 국토를 피로 물들인 3년 전쟁을 통해 다져진 혈맹끼리의 동맹인 것이다. 비대칭 동맹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동맹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다. 그 동맹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전에도 충돌은 있었다. 박정희는 카터와 파국직전까지 갔다. “반미 좀 하면 어때?” 했던 노무현의 호기는 이라크 파병으로 덮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들어온 이 빨간 불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수준이 하도 낮아 이런 게 문제가 된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바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다.

 

다들 아시는 얘기니까 간단히 적겠다(숫자도 대략으로 표기한다). 우리는 지금 9천 6백여 억 원을 부담하고 있다. 그걸 4천억 원 정도 더 내라는 얘기다. 그리고 분담금 협상을 매년 하자는 게 미국의 주장이다. 이걸 놓고 협상 결렬이 열 차례나 반복되었다. 지엽적인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원래 사소한 문제가 커지고 커진 끝에 폭발하는 게 세상일이다. 방위비 분담금이 한미동맹을 허무는 뇌관이 될 일은 절대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해결이 아니라 결단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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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트럼프와 문재인의 문제이니 최종적으로 책임을 질 사람이 ‘결단’을 내리라는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무조건 들어주라는 얘기 절대 아니다. 올려주기 싫으면 당당하게 그렇게 말하고 당신들도(미국)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통보하라는 얘기다.

 

50조원 대 4천 억 원

 

정권의 입장에서는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올려주자니 지지층이 돌아설 것 같고 협상을 발로 차자니 후폭풍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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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 혹시 4천 억 원을 말하는 거라면 참으로 궁색해 보인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50조 원을 허공에 날리면서 안보를 위한 4천 억 원이 아까워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간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어이없는 일이 또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돈 몇 푼 아끼겠다고 동맹을 깨고 생존을 포기한 나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