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칼럼 2010.12.28 (화)
송년모임에서 일본인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뉴스가 뭐냐고 물어 봤다. 중ㆍ일 센카쿠열도 분쟁이나 도요타의 리콜사태, 하야부사(우주탐사선) 무사 귀환 등 언론에서 선정한 큼지막한 뉴스들에 관심을 기울인 일본인들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그 대신 "일본의 치부(恥部)가 드러났다"며 한숨을 쉬거나 "남의 얘기가 아니다"며 앞날을 걱정하는 답변들이 돌아왔다. 일본인들이 말한 자신들의 치부는 바로 `가족 해체`다.
숨기고 싶었던 일본의 가족 해체 진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은 올해 여름 도쿄 아다치구에서 한 노인의 유골이 발견되면서부터다. 가토 소겐 씨로 알려진 이 유골의 주인공은 올해 111세인 일본 열도 최장수 노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주택 1층에서 유골로 발견됐고,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 발표가 나왔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백골 상태인 그 앞으로 2008년과 2009년 `건강한 고령자`에게 주는 축하선물까지 보냈다고 한다. 일본은 이 사건을 계기로 3개월간에 걸쳐 전국 고령자 거주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00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무려 23만4300명이 생사와 주소가 확인되지 않은 행방불명자로 드러났다.
만약 80세 이상 고령자로 범위를 더 넓혀 조사했다면 행방불명자가 아마 수백만 명에 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이나 친지들 모르게 혼자서 죽음을 맞는 이도 한 해 평균 3만2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부모ㆍ자식 간에 유대관계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씩은 안부를 묻는다"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일본인들도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온 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고령화와 저출산, 후기 산업사회 진입과 서구식 의식구조가 맞물리면서 일본을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가족 해체 국가로 만든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올 연말 기획특집을 통해 "일본은 고족(孤族)의 나라가 됐다"고 선언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관계가 깨지면서 `가족사회`는 막을 내렸고 혈연ㆍ지연과 분리된 채 나홀로 생활하는 `고족사회`가 도래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년 뒤 일본의 전체 가구 가운데 독신가구 비율이 40%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사회 구조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데도 일본 내각부는 복지ㆍ출산 예산을 배정하는 것 외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부모에 대한 공경,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면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게 한국인들이다. 하지만 현재 40~50대 중년층이 노년층이 되는 30년 후에는 우리 사회에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과거 30년 전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에서도 빠른 속도로 가족 간의 유대관계가 와해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2010년 연말 일본인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가족 해체 현상은 우리의 미래 자화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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