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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현실(AR), 무엇을 상상하든 그만큼이다

배셰태 2010. 12. 11. 15:54

[콘텐츠포럼] 증강현실(AR), 무엇을 상상하든 그만큼이다

전자신문 칼럼 2010.12.06 (월)

 

바야흐로 스마트패드(태블릿PC)와 스마트폰의 춘추전국시대다. 스크린을 고를 때 십 년 전만 해도 사용자가 ‘얼마나 잘 보이는지’ 즉, 스펙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즉, 콘텐츠를 중시한다. 이제 우리는 스크린으로 일상을 데칼코마니처럼 찍어낸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이미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싶고,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고 그것을 실현해주는 것이 기술이다. 이러한 현대인의 욕망을 잘 반영하는 기술이 바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다.

증강현실이란 말 그대로 현실 환경에 가상의 문자나 이미지를 덧붙여 그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실재하지 않는 경기 점수나 국기를 그래픽으로 합성해 제시하는 경우나, 특수 안경이나 웹캠으로 책을 보면 그 위에 이미지가 덧붙여지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증강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how)’가 아니라 ‘무엇(what)’이다. 과연 현대인은 현실에 무엇을 덧붙여서 보고 싶어 할까. 이 ‘무엇’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따라서 증강현실은 마법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괜한 짓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증강현실은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을 제공한다. 다만 교육적 효과만을 내세우기 급급해 증강현실이 가진 다양한 재미요소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령 원소 주기율표나 구구단과 같은 사전적 정보를 증강현실로 보여주는 것은 무의미하다. 반면에 전자책으로 어린이들이 가볼 수 없었던 미래의 우주, 과거의 공룡시대를 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여주는 것은 효과적이다. 증강현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에서 위치기반서비스와 증강현실의 만남 역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증강현실을 활용해 주변 커피 전문점의 로고를 보여주는 현실 재현형 서비스는 크게 효과적이진 못하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러한 서비스는 최초에는 흥미롭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기존의 지도가 하던 역할을 부수적으로 수행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회색 도시에서 보기 힘든 자연 이미지, 사용자가 꿈꾸는 허구적 아바타 등을 증강현실에서 살짝 엿볼 때 일탈의 묘미가 있다. 증강현실은 인간의 ‘삐딱하게 보기’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도구기 때문이다.

박물관이나 고궁 등 공간 정보를 증강현실로 재현하는 경우에도 궁의 이미지를 단순히 반영하거나 사전적 정보를 증강하는 서비스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조선시대의 궁 생활을 허구적 캐릭터로 제시한다면 고궁은 살아있는 공간으로 인식될 것이다.

증강현실은 기술의 문제인 동시에 인간의 욕망에 관한 문제다. 우리의 현실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바로 이러한 불일치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도록 유도한다. 상상력과 기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데 인간은 현실에 부재한 것을 욕망한다. 현대인의 일상은 실재하는 것들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애초에 없다. 따라서 이미 일어난 일, 있는 것을 보여주는 기술은 의미가 없다. 증강현실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혹은 과거에 일어났을지도 모름직한’ 환상이다.

한혜원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munch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