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무소불위 자문위에 오도되는 대한민국■■

배셰태 2018. 1. 17. 13:09

[조동근 칼럼]무소불위 자문위에 오도(誤導)되는 대한민국

펜앤드마이크 2018.01.17 조동근(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5

 

국가와 정부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주인-대리인(principle-agent)’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정권이 정부조직을 꾸린다. 그렇다면 정권이 국가의 ‘대리인’인 셈이다. 정권은 선거를 통해 국가경영을 일정기간 동안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다. 하지만 정권이 국가 그리고 국민 위에 위치할 수는 없다.

 

한국의 후진적 정치의식과 문화로 인해 국가는 종종 정권과 호환된다. 정권이 국가이고 국가가 정권이다. 따라서 정권을 잡으면 자기 책임 하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문재인 정부는 더욱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신봉하는 좌파정부다. 대한민국이란 역사적 구조물을 헐고 다시 지을 요량이다. 그들 눈에 과거는 모두 적폐로 인식된다. 그 같은 논리대로라면 현재는 미래의 청산대상일 뿐이다.

 

<중략>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다양한 위원회를 설치했다. 대선공약집에서 신설하겠다고 한 위원회만 꼽더라도 ”일자리위원회,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 개헌특별위원회, 을(乙)지로위원회, 국방개혁특별위원회, 성평등위원회 등” 17개나 된다. 큰 파장을 일으킨 원자력발전공론화위원회는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위원회 공화국’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노무현 정부의 '위원회 공화국' 부활하나

 

집권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오만은 헌법을 오독(誤讀)해서이다. 우리 헌법 제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적고 있다.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뜻을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국민이 주인된 권리를 일관되고 명확하게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국민의 뜻이 정치적 편의에 따라 ‘우상화’ 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단화’될 수도 있다.

 

프랑스 헌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프랑스 헌법 제 3조 1항은 “국가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은 대표자나 국민투표를 통해서 국가주권을 행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권재민을 선언하면서 그 행사방식을 구체적으로 ‘대표자와 국민투표’로 한정하고 있다. 광장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2항은 “국민의 일부나 특정 개인이 주권의 행사를 특수하게 부여받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프랑스 헌법 기준에 따르면, 국체(國體)를 흔들 수 있는 각종 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은 그 자체가 위헌이다. 국민의 일부나 특정 개인에게 주권 행사를 특수하게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헌법은 권력남용을 견제하는 헌법적 안전장치를 갖췄다.

 

정부의 공식 기구도 아닌 ‘자문위’에서 자문형식을 빌어 개정헌법의 골격을 제시하는 것은 저의가 았는 위험한 접근이다. 물론 개헌은 할 수 있지만 개헌을 한다고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내재적 금선(禁線)’은 넘지 말아야 한다. 즉 국가체제의 본질적인 부분은 고칠 수 없다. 예컨대 공화정을 왕정으로 바꿀 수는 없다. 국민의 기본권을 축소하는 개헌은 불가능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개헌도 마찬가지다. 공개된 국회개헌특위 자문위원회 헌법개정 초안은 체제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공식기구 아닌 자문위에서 개정헌법 골격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

 

<중략>

 

무분별한 자문위 정치에 족쇄 채워야

 

<중략>

 

자문위원회는 국가적 공식기구가 아닌 특수 목적의 한시적 임의조직이다. 그들에게 누가 완장을 채워 주었는가. 국민이 위임하지도 않은 막중한 사무를 이들 조직이 수행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국정 표류가 아니면 그 어떤 것이 국정 표류인가. 그토록 닮고 싶었던 프랑스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무분별한 자문위 정치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 유리한 것만 선별적으로 발췌하는 편의주의적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국가의 대계를 그르칠 수 있다. 어떻게 만든 대한민국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