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을 대기업 몇 개 없다 한국경제, 고약한 일 겪을 것"
신동아 2015.10.30(금) 허만섭 기자
http://m.media.daum.net/m/media/economic/newsview/20151030103639744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5/10/20/201510200500010/201510200500010_1.html
'새누리당 최고 경제통' 이한구 의원의 경고
● 6대 한국 주력산업 모두 위기
● 19대 국회 가장 무능하고 엉터리
● 공천 룰, 私心 들어가 잔머리 굴려
1990~2000년대 ‘대우경제연구소장’으로 명성을 날린 이한구(70)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월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19대 의원들 중 첫 불출마 선언이라 신선한 충격을 줬다.
재무부 공무원, 미국 캔자스주립대 경제학박사 출신인 그는 김우중 회장 곁에서 대우경제연구소 사장을 지낸 뒤 정계에 입문해, 지금은 ‘새누리당 최고 경제통’으로 통한다. 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국회 예결위원장을 지냈고,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이자 ‘창조경제 설계자’로서 현재 국회 창조경제특위 위원장이기도 하다.
최근 국가·기업·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그를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그의 책상 옆 벽 위엔 ‘박근혜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였다. 그 옆으로 한쪽 면을 다 차지한 책장에 그의 독서량을 짐작게 하는 장서가 가득했다.
“경제위기 임박해 불출마”
▼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는 이유가….
“총선 준비하려면 지역구에 계속 나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제가 판단컨대 내년과 내후년에 우리나라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맞을 것 같아요. 세계경제의 틀이 크게 틀어지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고약한 일을 겪을 것 같아요. 그 대처 방법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4년 더 의원으로 있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한 일 같았습니다.”
예상한 것과 다른 대답이었다. ‘불출마’를 ‘경제’와 연결할 줄은 몰랐다. “세계경제가 퍼펙트 스톰(거대 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 ‘미스터 둠(Mr. Doom)’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를 떠올리게 한다.
▼ 불출마를 통해 정치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까.
“불출마는 저의 개인 일일 뿐이죠. 다만 우리 국회의원, 장·차관 중에 우리 경제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걱정입니다. 나라의 지도자로서 책임감이랄까, 의무감이랄까 이런 것을 가져야 하는데….”
▼ 경제의 틀이 틀어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가 8년째거든요. 이렇게 오래 탈출구를 못 찾는 것은 ‘에너지 폭발’이 임박했다는 의미죠. 과거 성장 방식으론 여기에 대처할 수 없고 기술 발전으로 돌파해야 하는데, 우리는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어요. 사회는 분열됐고 의사결정은 지리멸렬해요. 아니나 다를까 올 들어 성장잠재력이 급속히 떨어져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상황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제가 함부로 표현할 수 없지만, 아주 고약한 일을 맞을 가능성이 굉장히 농후해졌어요.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에 대응할 힘이 부치면 뜻밖에 많은 일이 생길 수 있죠. 재수 없는 이야기하면 안 좋으니까 구체적 사례로 말하진 않겠지만 고민해야 합니다.”
▼ 국회에 계속 남아서 일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있던데요.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그러면 연구를 못해요. 택일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경제위기론은 인터뷰 말미에 다시 묻기로 하고,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먼저 들어봤다.
<중략>
“대기업 행태 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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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관련해 “하나는 융복합기술산업이고 하나는 문화창작산업인데, 아직 목표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 왜 지지부진하다고 봅니까.
“규제가 너무 많아서 복합적인 산업을 일으키기 어려워요. 인재 양성, 교육도 안 돼 있고 금융기관도 말만 하지 실제로 바뀐 건 없어요. 정부3.0도 각 부처가 자기네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요. 세월만 보내요. 창조경제는 우리의 떨어진 생산성을 높일 중요한 수단이지만, 장관도 열성적이지 않고 관료 사회도 진도를 안 내고 대기업도 3~4군데 빼고 소극적이죠.”
▼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합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국가채무·가계부채·기업부채는 올라가고 세수도 부족하다고 하는데요. 중국의 부상(浮上)과 엔저로 수출도 부진합니다. 청년실업난도 심각한 수준인데요. 이 가운데 제일 주목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요.
“지금 열거한 문제들이 제각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똑같은 뿌리를 가졌죠. 우리 기업의 생산성, 소득창출 능력이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취업이 안 된다, 살기 어렵다는 분배 문제가 생기죠. 세수(稅收)는 줄어드는데 분배 문제를 풀려고 복지를 늘리니 재정 문제가 발생하죠. 근본적 해결책은 소득창출 능력을 끌어올리는 겁니다. 그걸 하려고 4대 개혁과 창조경제를 내걸었는데 야당은 국회선진화법으로 발목을 잡아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공무원도 의욕이 없는지 열심히 안 해요.”
▼ 기업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나요.
“생산비용을 낮추는 속도가 느린 거죠. 선진국에 비해 기술개발이 뒤처져요. 거래비용도 많이 나가요. 이게 다 규제와 관계되는 거고요.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비효율성이 커지는데 우리 상품에 대한 세계시장의 수요는 줄어드니 죽어나는 거죠. 기업이 이윤을 많이 내면 일자리도 늘고 임금도 오르죠. 모든 사회문제가 해결돼요. 우리는 이런 기업 환경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죠.
대기업 집단의 행태도 좀 한심해요. 조금 있으면 몇 개 빼고 다 죽을 수 있어요. 대기업이 끌고 가는 우리나라 6대 주력산업이 이대로는 중국한테 못 당해요. 중국이 구조조정하고 있어요. 조금 지나면 과잉생산시설들에서 덤핑 물량이 쏟아질 거예요. 중국의 기술 수준은 빠른 속도로 올라갑니다.
반면 우리 대기업 경영자들은 게을러요. 특정 그룹 좀 보세요. 지금 경영권 다툼 할 땐가요? 대기업은 창조경제 하라고 하면 ‘여건이 안 된다’는 둥 딴소리만 해요. 자기들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일인데도. 대기업의 생산비용과 거래비용은 날로 올라가죠. 그렇다면 경영자들은 처음 창업할 때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죠.”
규제는 많고, 의지는 없고
▼ 1990년 중반 이전엔 대학 졸업생들이 기업에 쉽게 취업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훨씬 커지고 기업도 많아졌는데 왜 취업은 더 어려워졌을까요.
“간단해요. 그땐 경제가 고도성장한 반면 지금은 성장률이 급격히 낮아졌어요. 기업이 국내에서 물건 팔 시장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죠. 또한 기업 문화가 달라졌어요. 여기엔 김대중 정부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전만 해도 대기업들은 빚을 내서라도 생산시설을 확대하려 했어요. 세계시장에 진출하려는 의욕이 넘쳤죠. 그런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역동적으로 투자하는 대기업과 은행을 정부가 다 죽였죠. 제일 시원찮던 은행들만 살아남았죠. 이후 대기업은 다시는 빚 내서 경영 안 해요. 도전의식이 사라진 거죠. 그리고 가능하면 사람 적게 쓰죠.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노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거든요.”
▼ 사람 쓰는 대신 자동화, 전산화로….
“그렇죠. 생산라인, 공장 어지간한 건 다 자동화해버려요. 우리 젊은이 중 상당수는 앞으로 해외에 나가 취업해야 할 거예요.”
▼ 우리 경제의 견인차인 조선, 철강, 자동차, 반도체도 위기라고 하는데요.
“모든 산업이 발아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를 거치는데 몇몇 산업은 이미 쇠퇴기로 접어들었어요.”
▼ 그러나 예를 들어 철은 인류 문명이 존속하는 한 계속 쓰일 것 같은데요.
“우리 기업이 생산하는 철강이 쇠퇴기에 접어들지 모른다는 이야기죠. 가격도 그렇고 품질도 그렇고. 우리 기업의 철강을 쓰는 신흥국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기울어졌어요.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괜찮았어요. 신흥국들이 잘나갔거든요. 여기에 중국이라는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어요. 중국은 인건비와 거래비용은 낮고 생산설비는 새로 만들어 좋아요.”
▼ 많은 국민은 여전히 우리 철강회사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옛날 생각이죠. 복마전, 위가 썩었는데 뭐가 되겠어요. 왜 그동안 표출되지 않았느냐. 성장기, 성숙기 땐 점포만 펼쳐놔도 물건이 팔리거든요. 그때는 자기가 잘나서 잘되는 줄 알아요. 좀 지나면 사정이 달라지죠. 그럴 때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하는데 안 했어요. 철강과 조선은 조금 지나면 근로자들 나이도 너무 많아져요. 일본 근로자보다 더. 신규채용을 못했으니까.
자동차산업의 경우 네덜란드나 독일은 고속도로를 통째로 빌려 무인 자동차 성능 테스트를 합니다. 우리는 규제 때문에 못 해요. 그거 풀어주자고 법안 냈는데 야당 반대로 통과가 안 돼요. 야당 사람들은 ‘창조’ 두 글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반대하죠. 우리 자동차회사도 문제입니다. 올해 중국에서 고전하는데, 계속 옛날 방식만 고수하니 그래요. 국회와 정부는 새로운 걸 못하게 하고, 기업 자체도 별로 할 생각이 없고. 옛날 것을 갖고 다른 나라로 가서 팔아요. 그것도 시간문제죠. 얼마 뒤면 중국차가 그곳까지 올 거예요. 폴크스바겐이 소비자를 속였다고 하는데, 기술 수준 자체는 우리 자동차회사보다 앞선 게 사실이거든요.”
“집값 오래 못 간다”
▼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도 사회문제화했습니다.
“그걸 대기업 탓으로 돌리긴 어렵고요. 우리나라는 중소기업도 발전하지 못하고 대기업도 정체 상태죠. 삼성전자 같은 곳을 뺀 대다수 대기업은 지금 약간의 독과점, 그리고 과거에 만들어놓은 브랜드로 살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얼마 뒤 몇 개 빼고 살아남기 어려워요. 대학생들이 안정적 직장이라고 해서 몰리는 것 외에 대기업에 뭐가 있습니까. 대기업은 대출도 안 받아요. 투자를 안 하니까.
그러나 산업이 성숙기 지나서 쇠퇴기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지죠. 대기업에 취직한 젊은 사람들도 10년 뒤를 생각해야 돼요. 일류대학 나와 안정적인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직장이 없어지는데 뭐가 안정되겠습니까.”
국가부채가 증가하는 것과 관련해 이 의원은 “우리는 미래 세대에 빚을 지우면서 큰소리친다. 완전히 비양심적이다. 빚과 자산을 함께 물려줘야 하는데 물려주는 자산이라곤 사교육밖에 없다. 그런데 사교육으로 배운 내용은 대학 입학 후엔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매매 활성화로 경기부양을 유도한 것과 관련해 “이자율을 올릴 수밖에 없다. 집값은 오래 못 간다. 지금 빚 내서 집 사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그렇지 유지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집값이 제대로 폭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외국에선 고점 대비 80%가 허공으로 날아갔다”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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