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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의사, 몸으로 들어간다

배셰태 2010. 9. 5. 12:56

[Why] [이인식의 멋진 과학] 로봇 의사, 몸으로 들어간다

조선일보 IT/과학 2010.09.04 (토)

1959년 12월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은 '바닥에는 풍부한 공간이 있다'는 제목의 연설에서 사람 몸 안으로 기계 의사를 집어넣어 질병을 치료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1966년 개봉된 영화 '환상여행'은 세균 크기로 축소된 의사가 환자의 뇌로 들어가서 생명을 위협하는 혈전을 제거한 뒤 환자가 흘리는 눈물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1987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 '이너스페이스'역시 축소된 사람들이 인체 안에서 잠수정을 타고 벌이는 갖가지 사건으로 꾸며져 있다.

 

21세기 초부터 마침내 파인만이 꿈꾼 기계 의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의사 대신 환자의 몸 안에 들어가서 질병을 치료하는 마이크로 로봇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이 로봇은 수백 미크론(또는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한 기계장치로 구성된다. 1미크론은 100만분의 1미터이다. 맨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기계 장치들, 예컨대 모터·기어·베어링 따위를 만드는 기술은 마이크로 기술이라 불린다.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은 인체의 어디에나 뚫고 들어가 의사 대신 질병을 진단하고 수술도 할 뿐만 아니라 약물을 환부로 정확히 투입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게다가 진단이나 검사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뇌, 신경계, 관상동맥 등 미세한 혈관은 물론이고 신생아나 태아와 같은 어린 인체에 대한 진단과 치료도 가능해진다.

 

1999년 이스라엘에서 최초의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M2A)을 발표했다. 음식처럼 먹는 캡슐형 내시경 로봇이다. 모양이 알약 같고 사진기가 달려 있으므로 '카메라 알약(camera pill)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캡슐형 내시경을 입안으로 삼키면 목구멍을 지나 항문으로 배설될 때까지 위와 창자 등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각 부위의 영상을 촬영하여 무선으로 의사에게 전송한다. 이른바 '캡슐형 내시경검사(capsule endoscopy)'는 소화기계통의 환자를 진단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카메라 알약은 의사의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카메라가 환부를 놓칠 경우 진단에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수동적인 카메라 알약을 능동적인 마이크로 로봇으로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캡슐이 자유자재로 몸 안을 돌아다닐 수 있게끔 다리와 프로펠러를 달아주면 의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서 진단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8월호에 따르면 다리가 네 개 달린 캡슐이 사람과 창자 크기가 비슷한 돼지 창자 속에서 실험 중에 있다.

 

다리로 움직이는 캡슐을 개발한 이탈리아 연구진은 특별한 기능을 가진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몸 안에서 스스로 형태를 만드는 수술용 로봇이다. 먼저 환자에게 위장 확장용 약을 먹이고 10~15개의 캡슐을 삼키도록 한다. 캡슐은 위장 안에서 의사가 지시한 형태로 신속히 조립한다. 의사는 조립된 로봇을 무선으로 조종하여 수술한다. 수술이 끝나면 로봇이 분해되어 캡슐은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탈리아 연구진의 캡슐 로봇 개발에 한국 기술진도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식ㆍ과학문화연구소장·KAIST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