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1)

지식 전파에 기여 못한 고려의 세계 첫 금속활자와 한국 기업문화의 공통점

배셰태 2015. 2. 22. 06:22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지식 전파에 기여 못한 세계 첫 금속활자와 한국 기업문화의 공통점

매일경제 2015.02.16(월) 김인수 논설위원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156752

 

쿠텐베르크보다 몇 백 년 앞서 금속활자를 개발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최근 새롭게 확인됐다는 소식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른바 증도가자 (證道歌字)가 지금껏 알려진 최고 (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1377, 사진)보다 최소한 138년 이상 앞섰다고 한다.

 

이게 맞다면, 서양에서 금속활자를 최초로 발명했다는 쿠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빨리 한반도에서 금속활자가 사용됐다는 뜻이 된다. 상투적 표현으로 `한민족의 우수성이 입증됐다 `며 흥분해야 할 소식이지만 씁쓸한 기분만 앞선다. 고려의 금속활자는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달리 소수의 지식 독점을 깨고, 지식을 전파하고 공유하는데 별 기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략>

 

안타깝게도 한국 기업들은 실리콘밸리보다는 루트 128에 가깝다. 자사가 보유한 지식과 기술이 회사 밖으로 빠져나갈까 안달하고 겁을 낸다. 그래서 직원 중 한 명이 회사를 떠나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소송을 내겠다며 압박한다. 자기 회사에서 일하며 습득한 기술과 지식을 창업에 활용하면 `기밀 유출`이라는 이유로 검찰에 형사고발까지 한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게 매우 어렵다. `코드 16600`이라고 불리는 캘리포니아 주법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서는 개인의 합법적인 취업, 거래, 또는 어떤 종류의 비즈니스를 방해하는 모든 계약은 무효가 된다. 임규태 조지아 공대 연구교수가 쓴 `우리 동네는 왜 실리콘밸리가 될 수 없을까`라는 글에 따르면 코드 16600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들이 떠나는 직원을 잡을 방법도, 기밀 유출을 막을 방법도 없다고 한다. 그 덕분에 실리콘밸리 직장인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손쉽게 창업할 수 있게 됐다.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소송으로 직원의 창업을 막기보다는 지원하고 파트너 관계를 맺는다.

 

오늘날 한국 기업들은 누구나 계속해서 혁신을 외친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에서 옛 금속활자의 이미지가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금속활자와 관련된 기술이 주자소 등 국가기관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듯이, 오늘날 한국 산업계에서는 지식과 기술이 특정 기업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와 달리, 확산, 전파, 공유의 문화가 부족하다. 그 결과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조선의 금속활자가 별 다른 역사적 의미를 갖지 못했듯이, 루트 128 지역의 기업들이 잊혀졌듯이, 혁신과 창조의 에너지를 상실하고 뒤쳐질 것 같기 때문이다.

 

*참조=조선시대 출판 인쇄에 대한 국가 통제 부분은 강명관 님이 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에서 주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