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도시 성공하려면 정교한 세금과 현지 문화 결합 필수”
조선일보 2013.09.16(월)
지난해 9월 20일 박원순 서울 시장은 ‘공유 도시’를 선언했다. 물건과 공간, 정보와 지식, 재능까지 공유하는 공유 경제로 도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 공유경제는 도시 혁신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박 시장은 최근 공유 경제 전문가로 꼽히는 레이첼 보츠먼 협력연구소 소장과 ‘공유경제와 도시의 과제’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레이첼 보츠먼은 공유경제와 협력적 소비를 연구하는 협력연구소 창업자 겸 소장이다. 그는 세계경제포럼의 ‘2013 젊은 글로벌 지도자’, 영국 국제정치 및 디자인 전문잡지 모노콜의 ‘당신의 콘퍼런스에 초청해야 할 세계의 톱 20 연사’에도 꼽혔다.
박 시장은 “지역의 특성을 살린 공유 기업이 출현할 수 있도록 정교한 세금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츠먼 소장은 “온라인 평판이 신용 경제를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음은 박 시장과 보츠먼 소장의 대담 전문. 대담 진행은 우병현 조선비즈 총괄이사가 맡았다.
▲사회자(우병현) = 우선 박 시장께서 ‘공유 도시 서울’을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 ▲ 박원순 서울 시장 /이명원 기자
서울시는 올해 공유촉진 조례 통과시켰다. 공유단체와 기업, 공유 포럼을 지원하고 있다. 공유 종합 정보 사이트 ‘공유허브(http://sharehub.kr/)’도 열었다. 서울시의 공유경제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3~5년 내 서울 시민의 생활과 태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레이첼 보츠먼 (이하 보츠먼) = 공유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인가.
▲박원순 = 1990년대 말 영국 런던 옥스퍼드대에서 1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자원 재활용을 주목적으로 하는 ‘아름다운 가게’를 시작한 것이 계기다. 이 가게는 전국 400개가 생겨날 정도로 매우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 보츠먼 = 이름을 짓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일반인이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누구는 공유경제를 경기 불황기에 찾아와 곧 사라질 트렌드라고 봤다. 공유경제라는 개념을 소개한 지 불과 2년 만에 전 세계로 확산했다.
▲ 사회자 = 보츠먼 소장이 다른 도시 사례를 많이 아는 만큼 공유 도시 정책에 필요한 꼭 조언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
▲ 보츠먼 = 개인적으로 남극을 제외하고 지구촌 모든 대륙을 방문했고 수많은 사회적 기업을 봤다. 서울은 늦은 편이 아니라 앞서 가는 편이다. 다른 도시의 경우 풀뿌리 시민 활동이 없거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리더십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에 대한 첫 번째 조언은 서울시의 사례를 국제무대에 많이 소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도시와 파트너십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 덕분에 공유 경제 활동에 관한 서울 시민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두 번째 조언은 ‘균형’이다. 서울은 런던, 암스테르담, 샌프란시스코, 파리와 달리 정부 주도의 ‘톱 다운’ 정책을 펼치고 있다. 유럽 도시들은 대체로 아래로부터 위로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앙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영국 총리는 풀뿌리 운동과 탈(脫)중앙화를 강조했는데, 국민은 정부의 역할을 아쉬워했다.
세 번째 조언은 ‘스토리의 중요성’이다. 가령, 차량 공유업체의 등장은 택시업계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부정적인 언론 기사가 쏟아지면 공유 경제라는 참뜻이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택시업계의 이해 관계가 중심 이슈로 부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민 참여도를 높이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만들어낼 때는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때로는 슈퍼스타를 내세워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할 필요성도 있다. ‘하이테크(첨단 기술)’도 중요하지만, ‘하이 터치(높은 감성)’도 중요하다.
▲ 사회자 = 보츠먼 소장에게 묻고 싶다. 미국과 유럽에서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 공유업체가 규제와 세금 문제에 부딪혀 있다. 서울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해결 방법이 있나.
▲ 보츠먼 = 공유기업이 성장하면, 기존 사업을 위협한다. 이때 갈등이 싹 튼다. 지역 호텔은 ‘에어비앤비’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은 세금을 내는 데 숙박을 공유한 개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당국도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가령, 미국 관광사업부(tourism board in US)는 호텔 세금에 재정을 의존한다.
세금 제도를 보다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규모와 수익성, 사회적 영향 등을 고려해 세금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수익성은 낮고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이 있는 기업이라면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 맞다. 또 빈방을 내 준 사람이 개인이라도 1년에 5000달러가 아니라 10만 달러를 벌면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흑백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각 사정에 맞게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 사회자 = 박 시장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 박원순 = 공유경제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질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가게는 매출액 300억원을 기록했지만, 무한대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 보츠먼 소장이 언급한 대로 정교한 세금 제도는 필요하다. 현재 법으로도 교회의 공간을 종교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쓰면 세금을 내야 한다.
▲ 사회자 = 두 분의 공통 키워드는 ‘균형’인 것으로 보인다. ‘에어비앤비’ ‘우버’는 글로벌 기업이다. 한국에도 유사 기업이 있지만, 두 회사에 비해 자금력이 떨어진다. 지역 기반 공유 기업들이 외면당할 수 있다.
▲ 보츠먼 = 정말 도전적인 과제다. 글로벌 기업에 대응해 현지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가령, 에어비앤비가 서울에 진출하면, 현지 기업을 인수합병해 규모를 더 키울 것이다. 미국 기업은 대개벤처 자본이 막대하고 공유 기업 역시 엄청난 투자금을 등에 업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
지역 기업들은 ‘규모(scale)’로 싸워서는 안 된다. 차별화 전략을 취해야 한다. 차별화 포인트는 문화에 대한 심층 이해, 현지 기업과의 제휴 등이다. 호주의 심부름앱 ‘에어태스커(airtasker)’가 좋은 예다. 이 회사는 호주의 직업 소개 및 고용 전문업체 몬스터와 제휴를 맺었다. 결국 ‘태스크래빗’이라는 글로벌 기업은 호주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영국에는 ‘원파인스테이(one fine stay)’라는 숙박공유업체가 있다. 이 회사는 등록 재산이 100만 달러 이상인 이용자를 대상으로 양질의 서비스 제공해 에어비앤비와 차별화했다.
▲박원순 = 토착 기업이 성공한 사례도 많다. ‘굿윌’, ‘구세군’ 등 자본과 규모를 갖춘 미국 사회적 기업들이 잇따라 한국에 진출했지만, ‘아름다운 가게’를 넘어서지 못했다. 오히려 아름다운 가게가 구세군에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문제를 풀 수도 있다. 아름다운 가게는 영국 구호단체 ‘옥스팜’에 직원을 파견해 이 회사의 50년 노하우를 배웠다.
▲ 사회자 = 보츠먼 소장은 최근 공유 경제이라는 개념을 ‘평판 경제(reputation economy)’라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평판 경제는 무엇이며 평판 경제 관점에서 도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 ▲ 레이첼 보츠먼 협력소장/이덕훈 기자
평판은 규제의 패러다임도 새롭게 바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 당국은 차량 공유업체인 ‘리프트’에 대해 영업 정지 제재를 가하려고 했다. 운전기사가 아닌 일반 운전자들이 대신 차를 몰아주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프트는 운전자와 승객에 관한 평판 정보를 어마어마하게 갖고 있다. 평판은 규제보다 인간의 행동을 보다 바르게 만든다. 평판을 규제 대용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엔 신경과학자와도 얘기를 많이 나눈다. 많은 실험 결과 사람들은 평판과 돈을 일치해 생각한다. 온라인 평판이 나쁘게 달리면 사람들은 도박으로 돈을 잃었을 때와 유사한 반응이 뇌에서 나타난다.
▲ 사회자 = 박 시장은 익명의 도시인 서울에 ‘마을 공동체’를 부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공유경제와 마을 공동체는 어떤 관련성이 있나.
▲박원순 = 서울시에서 공유경제 프로젝트 하나로 ‘세대(世代) 공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노인 세대가 인근 대학생에게 빈방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이 생각보다 잘 안됐다. 문제는 불신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온갖 험악한 일이 생기다 보니, 세대주들이 젊은이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때 대학생에 대한 정보를 세대주와 공유해주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대학생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대주에게 알려주었다. 공유란 신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신뢰는 또 소통이다. 최근 청주의 한 아파트로 이사 간 어린이가 엘리베이터에 자신을 소개한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의 쪽지 옆에 이웃들이 수십개의 환영 쪽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공동체에 기초하면 신뢰를 바탕으로 수선가게부터 반찬가게까지 다양한 비즈니스가 일어날 수 있다. 공유하고 신뢰하면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막대한 세금도 아낄 수 있다. 서울시가 공유도시 모델를 지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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