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문재인 정부 대북 물밑 지원·거래 내용 밝히는 ‘징비록’ 수준 백서 남겨야■■

배세태 2022. 3. 28. 16:19

文정부 대북 물밑 지원·거래 내용 밝히는 ‘징비록’ 수준 백서 남겨야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조선일보 2022.03.28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03/28/73DLKQKE4JA2RGSVLAW4PBSKGI/

북한이 대선 이틀 만에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짧게 보도했다. 북한이 남한 보수 후보의 당선을 이름까지 포함해 즉각 보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과거에는 일주일 이상 침묵을 지켰다. 통전부를 비롯한 대남 부서들은 대책 수립에 골몰할 것이다. 2007년 10·4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정부는 무리한 대북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대한 이행 여부를 둘러싸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평양 주석궁과 청와대가 2년간의 물밑 갈등 끝에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떤 대북 지원을 했는지, 4·27 판문점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공한 USB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미공개 상태다. 북한이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호의적이었던 문재인 정부에 막말과 욕설 퍼레이드를 퍼부은 이유는 미스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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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은 주종의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판돈 전체를 평양에 베팅했던 문재인 정부의 남북 관계는 과유불급 수준을 넘어서 갑을 주종 관계였다. 주종(主從)에서 주주(主主)로의 남북 관계 정상화의 핵심은 문 정부가 평양에 제공한 대북 선물 세트의 수정과 폐기다. 대북전단금지법, 9·19군사합의, 종전선언 등 이른바 3대 종합선물세트는 국민들의 자긍심과 국가 품격을 손상시켰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일명 ‘김여정 하명법’이다. 2020년 6월 북한의 김여정은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것을 청와대에 요구했고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던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법을 일방 통과시켰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대북전단금지법은 김정은 남매를 달래기 위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대북전단은 주민들이 북한 내부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는 단초다. 윤석열 당선인이 취임하면 여소야대 정국이라 당장 법을 폐기하기는 어렵지만 처벌 수위를 낮추는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무용지물로 변해가는 9·19군사합의는 폐기가 불가피하다. 전방초소(GP) 철거 등 남한의 일방적인 무장해제로 가는 군사합의는 비무장지대에 안보 취약점을 노출시켜 탈북자의 월북에도 깜깜이다. 실탄사격 전술훈련을 금지함에 따라 총 한 방 안 쏴 보고 GP 병사들이 전역한다. 유사시 북한의 기습 도발이 감행될 경우 대응 사격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이미 군사합의는 휴지 조각이 되었다. 선거를 하루 앞둔 3월 8일 북한 경비정이 NLL(서해북방한계선)을 7분간 월선함으로써 합의를 위반했다.

6·25전쟁 종전선언 카드도 접어야 한다. 하노이 노딜이후 끄집어낸 문 정부의 종전선언은 맥락과 시점이 맞지 않는 자충수 카드였다. 미·중은 물론 당사자인 북한조차 관심 없는 종전선언 카드는 임기 말 외교를 통한 국익 실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제한된 국력으로 스마트한 외교가 필수적인 중차대한 시기에 당사자인 북한조차 공허하게 평가하는 종전선언에 올인한 정책은 국력 낭비 사례다.

북한은 정초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해 12차례의 소나기 미사일 발사로 2018년 선언한 핵과 미사일 발사 유예조치인 모라토리엄을 파기했다. 레드라인을 넘은 ICBM 발사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수명을 다했다. 하지만 문대통령이 주재한 NSC 발표문에는 여전히 ‘도발’ 표현이 없다. 5년간 안보불감증이었던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의 청와대 용산 이전 반대 이유로 안보를 내세우는 것은 내로남불이다. 문 정부는 5년간의 대북정책에 대해 자화자찬이 아닌 임진왜란 이후 징비록(懲毖錄) 수준의 남북관계 백서를 남겨 새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도록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능라도경기장 15만 군중 앞에서 연설하고 김정은과 부부동반으로 백두산 정상을 등반했는데 왜 북한이 세계 최장의 다탄두 형태 ICBM을 발사하는지 당사자로서 역사 앞에 진상을 밝혀야 한다. 무리한 물밑 거래나 지원 약속 등도 고백해야 천안함 폭침 같은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문 정부는 동맹을 거래 수단으로 격하시키고 폄하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치의 토대를 무너뜨렸다. 청와대는 함께 피를 흘리고 싸웠던 동맹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어설픈 운전자론, 섣부른 중계자론의 망상으로 동맹의 품격을 내팽겨쳤다. 지난해 5월 미국은 백악관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 참전 노병에게 미군 최고의 훈장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기억하지 않는 한국 지도자에게 던지는 무언의 이벤트였다.

선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한반도 현실은 냉엄하고 복잡하다. 대북정책은 리셋될 것이지만 과정은 성장통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북한은 역대 보수 대통령에 대해서는 취임 초반부터 강대강 전략을 택했지만 올해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갈등으로 미국의 전선이 확대되면서 예사롭지 않다. 신형 ICBM의 추가 발사와 7차 핵실험 카드도 임박했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확정된 날 김정은이 직접 ICBM 발사 재개를 공식화했고 실행에 옮겼다.

새 정부의 외교안보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스마트해야 한다. 한미동맹에 의한 강력한 억지전략을 토대로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것은 기본이다. 북한 비핵화를 유도할 로드맵도 필요하다. 한반도 안보의 파수꾼 역할에 실패한 국가정보원의 기능 정상화도 불가피하다.

지정학적으로 주변 열강들 사이에 ‘낀 국가’인 한국의 외교안보는 항상 긴장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사달이 날 수 밖에 없다. 한반도 북쪽은 끊임없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지역이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간의 갈등은 동북아의 복합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동맹의 느슨해진 린치핀(핵심축)은 단단하게 조여야 한다.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는 수레바퀴가 작동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과거사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도 일단 신작로로 견인해야 한다. 한 달을 넘긴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외교적 담판으로 거란으로부터 압록강 동쪽 강동 6주를 획득한 서희 장군의 스마트한 외교를 펼쳐야 하는 숙명적 과제를 안고 있다. 한반도 격랑의 시기다. 축배의 시간은 가고 고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