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윤석열의 '고발사주' 의혹 새 국면…녹취록 속 김웅의 '수상한 부탁'

배세태 2021. 10. 7. 18:26

'고발사주' 의혹 새 국면…녹취록 속 김웅의 '수상한 부탁'
시사저널 2021.10.07 이혜영 기자
https://n.news.naver.com/article/586/0000029714

김 의원, 조성은에 고발장 전달한 당일 두 차례 통화
"대검에 접수·억지로 받은 것처럼 해야" 상세 지시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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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 국민의힘 의원(오른쪽)과 김성원 의원이 10월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발사주' 의혹이 새 국면을 맞았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제보자 조성은씨 간 통화 녹취가 전면에 등장하면서다. 녹취록 내용이 조씨의 기존 발언과 상당부분 일치하면서 윤석열 검찰의 조직적 선거 개입 의혹도 한층 짙어진 상황이다.

정치권도 술렁이고 있다. 여당은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반면 윤 전 총장은 녹취록 유출 경위와 시점에 초점을 맞추며 공작설에 힘을 실었다. 공수처는 녹취록을 고리로 검찰의 조직적 고발사주가 있었는지, 관련자들의 지시·보고·전달 체계 등을 규명하는데 속도를 낼 방침이다. 

두차례 통화한 김웅-조성은, 무슨 대화 나눴나 

7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발사주 의혹을 수사하는 공수처는 김 의원과 제보자 조성은씨가 지난해 4월3일 통화한 녹취 파일 2건을 복구했다. 조씨가 공수처에 제출한 휴대전화에서 삭제됐던 파일이지만,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복구됐다. 통화 시점은 김 의원이 조씨에게 '손준성 보냄'이라고 표기된 텔레그램 메시지로 고발장을 전송하기 전후 2차례다. 

복구된 녹취 파일에 따르면, 김 의원은 조씨에게 "우리가 고발장을 보내겠다", "대검에 접수하면 잘 얘기해 놓겠다" "검찰이 (고발장을) 억지로 받은 것처럼 해야 한다"는 등 상세한 지시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김 의원은 미래통합당 총선 후보(송파갑) 신분이었지만, 검찰에서 나온 지 불과 3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주체가 검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 의원이 고발장을 대검에 접수토록 하고, 억지로 받는 모양새를 연출토록 한 것 자체로 검찰의 개입을 자인한 꼴이 된다. 그동안 고발장 내용과 전달 경위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 온 김 의원이 단순 전달자가 아닌 적극 가담자일 가능성도 커졌다. 

녹취록 속 김 의원의 '수상한 당부'는 대검 인사들과 고발장 관련 논의를 거쳤고, 기획부터 실제 고발까지 모의했던 정황이 드러날 경우의 후폭풍까지 고려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검찰이 고발장을 억지로 받는 모양새를 취하도록 한 것도 대검이 야당을 통해 고발사주를 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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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씨가 10월5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김웅 ·권성동·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주광덕·박민식·김경진 전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수처는 김 의원과 조씨의 통화 내용이 복원된 만큼, 고발사주 문건 연결고리의 출발점을 규명하는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녹취 파일의 진위 확인을 위해 김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도 진행할 방침이다. 김 의원은 녹취록 내용이 알려진 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복구된 통화 녹취록에서 고발장 최초 작성자와 전달 경위를 파악할 주요 단서를 포착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이번 녹취록 외에 구체적인 물증이나 진술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김 의원은 6개월 주기로 휴대폰을 교체해 당시 사용하던 기기를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손 검사는 아이폰을 사용해 비밀번호 해제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고발장 중간 전달자로 지목된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법률지원단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도 이렇다할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실제 대검에 접수하는데 관여한 조상규 변호사(당시 미래통합당 법률자문위원)의 사무실에서 확보한 고발장 관련 초안과 휴대전화 등을 통해 추가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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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들이 10월7일 국회 소통관에서 '고발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씨와 김웅 국민의힘 의원 간 통화 녹음 파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與野, 녹취록 놓고 엇갈린 반응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녹취록이 윤석열 전 총장의 지시와 검찰의 조직적 선거 개입을 드러낸 것이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7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에서 "윤석열 검찰이 덮고 싶은 추악한 비밀이 공개됐다"며 "국민의힘은 즉시 김 의원을 제명하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우리가 남이가' 했던 초원 복집 발언 이후 가장 무서운 말"이라며 "완벽한 각본 짜준 당사자는 최근까지 기억 안 난다는 일관된 거짓 해명으로 국민을 우롱했다"고 맹비난했다.

김영배 최고위원은 "모든 정황의 처음과 끝에 윤 전 총장이 있다"며 "이제 진실의 문턱에 와있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정치 검찰총장과 검사들의 선거 개입 시도와 검찰 쿠데타의 민낯을 반드시 밝히겠다"고 경고했다.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사주 의혹을 '검찰의 명백한 정치 개입이자 선거개입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손준성 검사와 김 의원 개인이 벌인 일이 아니라 '윤석열 대검'이 기획하고 국민의힘을 배우로 섭외해 국정농단을 일으키려 한 사건"이라고 맹공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에서 "이번 사건을 덮으려는 세력은 박지원 국정원장의 '제보사주'라는 희한한 프레임을 들고나왔다"며 "청부 고발은 사정기관이 공권력을 사유화한 희대의 국기문란 사건이다. '제보사주'라는 또 하나의 수사 연극에 놀아날 국민은 이제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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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0월7일 인천시 남동구 국민의힘 인천광역시당에서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당은 녹취록 파장 확산을 최소화하며 유출 시점과 경위에 초점을 맞춰 역공을 펼쳤다. 고발사주 의혹으로 공수처에 입건된 윤 전 총장은 이날 녹취록 내용이 알려진 데 대해 "당내 경선에 맞춰 이런 걸(수사내용 유출) 한 것 같다"며 자신을 음해하기 위한 정치 공작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다. 

이준석 대표도 보도된 녹취록 내용에 대해 "전체적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새로운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이) 조씨에게 그런 요청을 했지만, 조씨가 추가적인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이 팩트"라며 "수사 중간 단계에서 야당 인사 관련 내용이 유출된 것은 의아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