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81] 주적을 주군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조선일보 2020.10.14 김규나 소설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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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하나 그녀를 쳐다보거나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희생시키고 나서 더럽고 쓸모없는 물건처럼 내던진 무리들이 그녀를 멸시하고 있었다. 굶주린 이리 떼같이 그들이 먹어 치운 음식이 가득 담겨 있던 커다란 바구니가 떠올랐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 애썼으나 눈물이 흘러내렸다. 계란을 다 먹은 민주주의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기 드 모파상 ‘비곗덩어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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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 북한이 노동당 창당 기념식을 했다며 뉴스마다 요란하다. 불과 며칠 전 우리 국민을 사살·소각한 김정은이 ‘사랑하는 남녘 동포’라고 했단다. 그게 감동이었을까, 국군의 날 퍼레이드가 없어 아쉬웠던 탓일까? 몇몇 방송사는 김일성 광장에서 야밤에 벌어진 괴이한 행사를 중계했다. 적에게 자국민이 총살당했는데도 종전 선언을 하자는 권력자 치하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프랑스 작가 모파상이 1880년에 발표한 소설 ‘비곗덩어리’는 공짜로 누린 행운일수록 그 쓸모가 다했을 때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인간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 지역을 벗어나려고 마차에 탄 승객들은 엘리자베스가 비곗덩어리 소리를 듣는 매춘부임을 알고 껄끄러워하지만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그녀가 가져온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싫다는 그녀를 적군 장교의 침실에 들여보낸다. 그 대가로 자유를 보장받게 되자 고마워하기는커녕 불결하다는 듯 그녀에게 모멸감을 주고 음식조차 나눠 주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를 원한 건 장교가 귀부인들을 존중하는 신사이기 때문이라며, 자기들을 인질 삼은 적군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그들이었다. 민주주의 투사라는 사내야말로 휘파람을 불며 그녀의 희생과 눈물을 한껏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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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소설가
언제부터였을까? 주적을 주군 모시듯 한다. 품 팔고 머리카락 팔아서, 사막과 전쟁터를 뛰어다니며 피와 땀으로 지켜낸 풍요와 자유를 누린 자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인질들처럼, 몸과 마음을 바쳐 북한을 흠모한다. 헬조선이라는 조롱과 함께 내팽개쳐진 대한민국, 승객들을 살렸지만 경멸당한 엘리자베스 신세와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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