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큐레이션/국내외 사회변동外(2)

■■죽은 자들을 위한 세상...김정은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배세태 2020. 4. 29. 17:29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57] 죽은 자들을 위한 세상

조선일보 2020.04.29 김규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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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소설가


모든 통신 수단이 사라져 버렸다. 라디오, TV, 신문 등 언론이 넘어갔고 전화와 전보까지 그들이 장악해 버렸다. 반대편 사람들이 반격할 수 없도록,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두 점령해 버린 것이다. '패배'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것이 어쩔 수 없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야. 그들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 그다음은 우리의 죽음이겠지.' - 필립 K. 딕 '죽은 자가 무슨 말을' 중에서

 

김정은의 생사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북한에는 두 구의 시신이 보존되어 있다는데 소문대로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그 또한 미라가 되어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3대가 나란히 전시될지도 궁금해진다. 레닌과 스탈린, 호찌민과 마오쩌둥의 경우처럼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죽은 자를 신격화하여 정치 생명을 이어 간다. 망자를 땅에 묻거나 화장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방부 처리에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산 사람을 죽은 사람 앞에 머리 숙이게 한다. 썩어 가는 몸을 앞세워야 할 정도로 통치가 어렵고 권력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토탈리콜'의 원작자 필립 K. 딕은 1964년에 발표한 '죽은 자가 무슨 말을'이란 SF소설을 통해 망자를 이용한 권력 쟁탈은 미래에도 계속되리라고 예견했다. 정·재계의 큰손이던 사라피스가 죽자 그의 생전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언론 매체는 물론 개인의 전화 통화 기능까지 장악하여 위조한 망자의 목소리를 내보낸다. 세상은 온통 죽은 자의 지시와 간섭으로 채워지고, 그 결과 그들이 원하는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에 지명된다. 결국 반대파는 죽은 자의 망령을 걷어 내고 개인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총을 집어 든다.

 

죽은 자가 계속 말을 해야 통제할 수 있는 사회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세상이 아니다. 사실 김정은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말이 나도는데도 쉽게 해명하지 못할 정도로 권력 누수 또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에 주목할 뿐. 무엇보다 죽은 자를 위한 세상에서 억압과 패배와 죽음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면 무엇이 더 두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