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전쟁과 한국의 대응] ② 기술이 곧 패권… 반도체·AI·배터리 ‘전쟁의 최전선’
[미중 패권전쟁과 한국의 대응] ② 기술이 곧 패권…반도체·AI·배터리 ‘전쟁의 최전선’
스카이데일리 2025.04.21 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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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단 기술 사슬 재편, ‘기술 독립’이냐 ‘기술 동맹’이냐 선택 귀로
- ‘기술은 곧 외교’, ‘기술력은 안보다’라는 인식 전환 필요
▲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5편 시리즈]
① 관세에서 패권으로…미중 무역전쟁 장기전, 이제 시작일 뿐
② 기술이 곧 패권…반도체·AI·배터리 ‘전쟁의 최전선’
③ 달러·위안 전쟁, 금융이 무기다…韓의 방어전략은 무엇인가
④ 안보전략도 전쟁 중…한반도, 패권 충돌의 접경지가 되다
⑤ ‘10년 전쟁’의 서막…한국, 선택받는 나라에서 선택하는 나라로
2018년부터 관세를 중심으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2025년 현재 ‘기술이 곧 국력’이라는 명제를 중심에 두고 기술패권전쟁으로 진화했다. 반도체·AI·배터리·우주·양자기술 등 첨단 산업 전반이 전장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한국은 기술동맹과 기술독립 사이의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기술 수출 통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장비·소프트웨어·설계 툴에 대한 대중 수출 금지를 주도하고, AI 반도체와 슈퍼컴퓨터에 대한 글로벌 연합 차원의 제재도 본격화했다. 트럼프 2기는 바이든 정부와 마찬가지로 ‘첨단기술이 군사기술로 전용될 수 있다’는 명분을 들어, 미국산 기술이 1%만 포함돼도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해외직접생산(FDV)’ 규정까지 확대 적용 중이다
.
이에 맞서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선언하며 대규모 국유 펀드를 통한 기술 국산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화웨이는 제재를 뚫고 자체 AI 반도체와 7나노 수준의 스마트폰 칩을 복원하며 기술 내재화의 신호탄을 쐈고, AI·양자컴퓨팅 등 규제가 느슨한 영역에서 빠른 상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EUV(극자외선) 장비 확보나 첨단 소재 확보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양국의 기술전쟁은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CHIPS Act와 IRA를 통해 동맹국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고, ‘우방국 중심 공급망(friends-shoring)’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가로 보조금을 제공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은 반드시 미국에 배치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고 있다. IRA의 경우도 전기차 배터리 소재에 중국산을 배제하며 한국·일본·유럽 기업들에 ‘미국 내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2기 들어서는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지원에 대한 재검토라는 방침을 내세우며 동맹국을 압박 중이다.
한국은 이 같은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나, 미국의 요구가 단순한 협력이 아닌 사실상의 ‘경제 주권 이양’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반도체의 경우,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현지 생산 확대와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한편, 중국 내 공장 증설은 제한하고 있다. 배터리 분야 역시 미국 보조금을 받기 위해 중국산 핵심 광물 사용을 줄여야 하는 구조여서, 원재료 조달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AI, 바이오, 우주, 양자기술 등 미래산업 분야는 아직 세계적 표준과 질서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아, 한국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틈새’가 존재한다. 다만 인재 유출, R&D 투자 부진, 기술 생태계 협소 등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기술 자립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은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세 갈래 길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하나는 미국 중심의 기술동맹에 적극 편입되는 길이다. 단기적으론 안보와 시장에서의 이익이 보장되지만, 장기적으론 기술 종속이 우려된다. 다른 하나는 중국과의 기술 교류를 부분적으로 복원하며 자율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제3지대’ 전략이다. 유럽, 동남아, 중동 등과의 협력을 통해 공급망과 기술협력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기술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방식이다.
결국 ‘기술은 곧 외교’이고, ‘기술력은 안보다’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위치에 머물 것이 아니라, 기술 주권을 확보한 주체적 행위자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의 생존과 번영은 결국 기술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